베트남 전쟁기념관을 남편과 친구가 다녀올 동안 난 그늘에 앉아 쉬었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Potomac(포토맥) 강을 따라 한없이 걸었다. Karl이 fish market에 가자는 것이다. 점심을 제대로 못 먹었으니 맛있는 것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가는 도중 우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기념관을 지나 조지메이슨(George Mason) 기념관을 거쳐 아름다운 하얀색 둥근 돔건물인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에 도착했다. 난 너무 힘들어 다른 기념관들은 대충 봐서 기역도 안 난다. 그냥 존재한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다. 이제는 슬그머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가까운 줄 알았는 데 한 40분 정도 걸어야 했다. 발이 자동으로 나를 옮겨가는 것 같았다. 관광이고 뭐고 정말 쉬고 싶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것 힘내자! Washington D.C. 에 온 지 3일째이니 중요한 것은 대충이라도 훑은 셈이다. 사실 제대로 보려면 한 달은 머물러야 할 것 같다.
제퍼슨 기념관으로 들어가니 돔 안의 그늘이 무척 시원하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기념관들과 박물관들은 거의 비슷한 형태의 건물들로 지어졌다. 마치 그리스나 로마시대의 돔형 건물이다.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다. 가운데 거대한 제퍼슨의 동상이 서있고 주위를 둘러 그의 어록이 벽마다 새겨져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생명, 자유, 행복 추구와 같은 그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독립선언문 처음에 나오는 문장이다. 난 처음으로 독립선언문 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다는 걸 이제 깨달았다. 미국 제3대 대통령이었고 독립선언서의 기초를 만든 그는 버지니아 주의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아버지가 14살에 세상을 떠나 거대한 토지와 30여 명의 노예를 상속받은 이다. 그 옛날 노예를 부리던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한 그가 너무나 존경스럽다.
이렇게 훌륭한 사상과 이념은 기독교 정신의 영향도 있었다는 생각이다. 미독립선언문은 벤자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로저 셔먼, 로버트 리빙스턴도 토마스 제퍼슨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작성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참을 앉아 더위를 식히고 우리는 또다시 Municipal fish Market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해는 이미 많이 기울어 더위가 좀 가셔서 다행이었다. 강을 건너 도착하니 온갖 종류의 배들을 묶어 놓은 부둣가에 많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어떤 곳이 맛있고 값도 합리적인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우리는 부두가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난 남편과 친구에게 이 정도로 오늘 일정은 끝내자고 하니 다 같이 찬성이다. Karl이 호텔에 도착해 우리가 얼마나 걸었는지 체크하겠단다. 우리는 Happy Hour라 간단한 식사만 했다. 그렇게 걸어서 피곤한 다리를 끌며 왔는 데 별로 생각보다 특별한 것도 없었고 메뉴도 그리 해산물이 많지 않았다. 아니 못 찾았다고 보는 게 맞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라고 위로하며 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그저 생각 없이 쉬었다. 남편과 친구도 맥주 한잔을 걸치며 그날의 힘들었던 여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남편과 친구가 나를 칭찬해 준다. 불평 안 하고 잘 걸어주어 고맙다나? 내가 생각해도 내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전철을 타고 호텔로 와 샤워한 후 다시 저녁을 먹으러 whole foods로 향했다. 배고프고 고달픈 여행객들의 안식처, Whole foods! Grocery Store(식품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우리를 사람들은 이해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피곤해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판이다. 호텔에 와서 친구 Karl이 몇 보를 걸었나 확인했다. 3만 보!! 일만보걷는 게 하루의 목표인데 3배를 걸은 셈이다. 친구왈 15마일 정도 된다나?? 내 평생 이렇게 하루에 많이 걸어본 것은 처음이다. 심지어 자전거도 이렇게 먼 거리를 달리진 않았다. 이 나이에 이게 가능하다니.... 평소 남편성화에 못 이겨 gym에 간 결과라고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