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에서 미시간으로 오는 길에 우리는 오하이오 데이톤에 있는 공군뮤지엄에 들렸다. 마침 남편 친구가 우리와 같은 날짜에 플로리다에서 미시간으로 올라가는 참이라 같이 이 박물관을 들리기로 했다. 라이트형제의 첫 비행기에서부터 정말로 비행기의 모든 것이 진열되어 다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적어도 이틀은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이리저리 돌아보던 중 남편친구인 Karl이 한국전 전시관을 먼저 찾아 우리에게 그쪽으로 빨리 오라는 것이다. 우리는 반대쪽에 자리 잡은 한국전 전시관을 찾았다. 우선 한국전 전시관이 그 관의 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우선 한반도 지도위에 크게 한국전이라 쓰여있고 한국전 당시의 주로 사용되었던 F-82 기종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리고 한국 국기의 파란색이 바래 거의 회색이 된 국기가 전시되어 있다. 그 당시의 국기를 그대로 걸은 것인지 아니면 잘못 채색된 것인지 알 수없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니 한국 전쟁이 일어난 역사를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참으로 즐겁지 않은 비극의 시작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한국전에서 싸운 40명의 전투기 조종사들의 이름과 사진들이 걸려있다. 그중에서도 소련미그기를 많이 격추한 두 명의 조종사이름과 행적이 걸려있다. Captain James Jabara와 Joseph McConnell, Jr가 그들이다. Jabara는 15대의 미그-15기를 격추시켰고 Mcconnell은 16대의 미그기를 격추시켰다고 전해준다. 또한 McConnell은 격추되어 적군의 통제에 있던 황해에 떨어졌으나 헬기의 구조로 무사히 귀환했으나 다음 날 또 전투를 위해 비행을 했다 한다. 이름도 모르는 극동아시아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모든 미국 조종사들과 군인들 그리고 전 세계의 병사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누군들 죽음이 두렵지 않겠는가? 더구나 이들은 꽃봉오리 같은 젊은이들 아닌가?
난 또하나의 전시품을 보기 위해 발을 멈추었다. 바로 조종사들이 지니고 있던 한국말 번역과 영어 쪽지이다. 그들은 비상시에 한국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낡은 종이조각을 가슴에 품고 다녀야 했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세세한 것까지 보관하고 있는지 놀랍다. 지금 표준어와 다른 서투른 한국언어에 내 가슴이 찡하다 못해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얼마나 그들은 이 낯선 나라에서 포로가 되거나 잡힐 경우에 대비해 절박했을까?
"미국말 아는 사람이 잇습닛가?
당신 은혜를 갑겟습니다.
배가 곱흡니다.
신세 만히 젓습니다.이 돈을 밧아요.
누군든지 내가 여게 잇다고 말하지마시요.
누구든지 나를 도와줄사람이 잇습니가
속히 도라오십시오
더운 음식 좀 주시요
나는 한국사람을 도와주려왓습니다."
옆에는 한국전당시 미그기를 몰고 남하한 노근석의 사진과 미그-15기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묘사해주고 있다. 그는 어머니가 남한으로 무사히 넘어간 것을 확인한 후 남하를 결심했다 한다. 그는 지금 결혼해 미국시민으로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산다고 전해진다. 노근석 조종사 덕분에 미국공군은 미그기를 해체해 분석할 기회를 가졌고 그당시 전투기 기종이었던 레이더가 장착된 F-82과도 비교할 기회를 가졌단다. 그 옆에는 한국전당시 처음으로 투입된 F-82G twin mustang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전당시 차단술에 B-26 전투기가 사용되어 그들의 창고와 수송을 공격했으나 나중에는 미그기의 위협과 고사포의 출련으로 밤에만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단다.
그 밖에도 너무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으나 우리는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다시 미시간을 향해 출발했다.
전쟁을 통해 기술이 발달하고 항공과 선박을 제조하는 기술이 발달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도 제1차 세계대전시 전투기가 독일과 영국, 프랑스에 비해 열등하였다고 한다. 아직도 우리를 피폐하게 만든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키며 악마의 짓을 계속하고 있다.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 참혹하고 길었던 한국 전쟁이 다시는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