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4
우리는 오늘 호텔조식을 먹기로 했다. 카페테리아로 내려가니 벌써 산해진미가 눈에 가득 들어온다. 폴란드 소시지, 갖가지치즈와 수프, 금방 짠 신선한 주스.... 우리나라도 음식문화가 높은 수준이라 별로 딱히 수준이 높다고 말하기보다 종류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특히 치즈가 다양해 온갖 풍미를 맛볼 수 있었으며, 과일 중 특히 살구와 무화과, 대추가 눈길을 끌었다. 수많은 뷔페를 다녀봤어도 살구가 디저트로 나와있는 것은 거의 처음이다. 하루종일 걸을 생각에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바르샤바에서 마지막 날이라 국립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버스로 몇 정거장 거리 대로변에 있어 가기 쉬웠다. 너무 많이 먹은 턱에 걷기가 힘들었다.
첫 번째 방은 종교적인 작품을 전시한 전시실이었다. 폴란드 사람의 약 85.9프로가 천주교 신자라 한다. 그 방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받는 그림이 온통 방을 장식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예수님의 얼굴이 화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슬픔의 조각상과 그림들을 보며 난 갑자기 우울하게 느껴져 남편에게 말해 일찍 나왔다. 마치 어떤 기운이 나를 누르는 느낌이었다.
남편과 나는 전쟁기념관, 유태인 학살 관련 장소는 가지 않기로 하고 간 여행이었다. 역사를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여행 가서 그런 우울함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폴란드 여행동안 너무나 많은 성당에서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봐서 엉터리 천주교 신자인 나도 숙연한 기운을 느끼지 않을 수없었다. 남편왈 많은 성당을 방문해 2년 동안 교회 안 가도 되겠단다. 아마도 이런 폴란드 사람들의 종교심이 환난에서 여러 번 나라를 구했는 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방들은 폴란드 화가들의 그림들과 이집트 문명, 그리고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중에 폴란드 농부들의 고단한 삶을 그린 그림이 있다. 그중 재밌었던 그림은 1490년에 그려진 'Tax Collectors'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남편이 그 그림 앞에서 화난 포즈를 취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수금원은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 중하나다. 또 한편으로는 교황들과 신부들의 장식품과 의복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또한 왕과 왕비의 의복 궁중의 가구, 식기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식기들 중에도 난 유난히 숟가락과 포크 등을 유심히 본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손잡이에 새겨진 문양이 재밌다. 또한 갖가지 문형의 tapestry(장식용 벽걸이 양탄자)도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국립박물관에서 약 35분쯤 걸어 쇼팽 공원으로 걷기 시작했다. 곳곳이 공사로 통제되어 돌아가야 했다.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덥기까지 했다. 가는 길내내 아름다운 건물과 교회가 걸음걸이에 치친 우리를 쉬었다 가게 해주었다. 폴란드에는 세븐 일레븐처럼 zabka와 Carfour라는 두 곳이 대표적인 편의점이고 어디서든지 찾을 수 있다. 거기에는 온갖 종류의 빵과 치즈 샌드위치등도 팔아서 급하게 끼니를 해결하기에 좋다. 드디어 우리는 쇼팽공원에 도착했다. 그날은 쇼팽의 피아노무료연주를 선보이는 날이라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커다란 쇼팽의 조각품에 마련된 무대에 젊은 피아니스트가 쇼팽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연못과 작은 장미들이 주변을 장식한 공원에서의 연주는 정말로 꿈만 같았다. 내가 멀리 폴라드에 와서 쇼팽의 피아노곡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게 감동이었다. 한가지 불편했던 점은 공용화장실이 없이 임시 화장실 두 개만 달랑 있어 나는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공원을 빠져나와야 했다. 사실 이런 모든 이벤트를 남편이 잘 찾아서 우리가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난 인정 한다. 남편이 이벤트를 찾으면 나는 길을 찾는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역시 여행은 인생여행이나 짧은 여행이나 서로 협조하면 수월하다는 것이 비슷하다.
부드러운 피아노의 선율에 푹 빠져 있다가 우리는 오는 길에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행인에게 물어 고급 주택가가 있는 길을 약 20분 정도 걸어 지하철을 타고 다시 호텔이 가까운 중앙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며 난 삼성과 LG의 큰 전광판을 볼 수 있었다. 세계 어디서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한국의 두 회 사 로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기업의 모순도 많지만 마음 한편이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지하철옆에 바르샤바에서 두 번째로 높은 'Palace of Culture and Science 건물에 들어가 보았다. 건물에는 전시실, 음악 이벹트 사무실, 수영장 등 다양한 용도가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 지치고 피곤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용하기로 했다.
이 건물에 잠깐 설명하자면 건물외관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흡사하고 44층 건물로 3288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1952년에 짓기 시작해 1955년 완공했다. 러시아가 폴란드를 점령할 때 러시아 건축가 Lev Rudnev가 설계했고 두나라의 노동자들을 고용해 스탈린 식의 건축 양식으로 러시아의 정치적 의도로 지어져 스탈린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한다. 꼭대기의 시계탑은 일본의 도쿄빌딩 시계탑이 세워지기 전까지 가장 높은 시계탑이란다. 사실 이 건물은 폴란드 사람들에게 강요된 원치 않은 선물이었다 한다. 위로 올라가 보지 않아 건물 주변만 돌아보았다. 돔형태의 입구가 뒤의 건물과 연결되어 있고 돌아가며 각기 다른 거대한 조각상이 서있는 데 특이한 것은 동양계의 소녀상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폴란드 시인과 폴란드 천문학자의 동상도 새겨져 있었다. 특이한 점은 건물 바깥벽에 온통 낙서로 뒤덮여 있고 관리가 잘 안 이루어진 느낌도 있었다. 이런 낙서는 폴란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이것에 대한 단속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어떤 규율에 구속받지 않고 사는 느낌이랄까? 또한 낡은 문과 곳곳의 파손된 부분이 수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다시 걸어서 호텔로 오는 도중 건물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웠다. 내일이면 우리는 다른 도시 Gdansk로 기차를 이용해 간다. 바르샤바! 이차대전 전쟁 중 완전히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이렇게 이루기까지, 1990년 소련의 통제에서 빠져나오기까지 많은 시련을 겪은 도시! 우리가 겪은 전쟁과 식민지의 역사 속에서 서울이 발전한 점과 비슷해 더욱 정이 갔다. 호텔로 오는 도중 간단히 샌드위치로 저녁을 먹고 도넛 가게에 들러 어김없이 도넛을 샀다. 이번에는 블루베리 도넛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