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의 여름은 보통 6월 중순부터라 해도 맞을 것 같다. 5월 6일 도착한 우리는 2주 정도 있다가 모종을 사다가 심었고 날씨는 큰 호수의 영향 탓으로 매우 변덕스럽다. 하지만 여름에는 해가 오래 머물러 낮이 길다. 보통 6월 21일 정도를 하지로 봐야 하는데 오전 5시 57분 정도에 떠 오후 9시 15분 정도까지 머문다. 남편과 나는 더운 낮시간을 피해 저녁 5시나 6시에 카약을 위아래로 밴에 싣고 10분 정도 운전해서 Stony Creek이라는 공원에 간다. 거기에는 제법 큰 호수에 sail boat나 motor boat, 카약을 띄울 수 있는 곳이 있어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간다. 낮동안에 데워진 공기가 대기 위로 올라가 저녁에는 늘 바람이 있다. 일단 카약을 싣고 내리고 번거롭지만 일단 카약을 띄우면 넓은 수표면과 주변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마음에 평온을 준다. 모든 걱정도 스트레스도 잠시 내려놓을 여유를 갖게 해 준다. 늘 생각하지만 미국의 넓은 자연은 늘 나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우리 한국이 조금만 더 넓었으면, 통일이 되어 남북한이 합해졌으면 하는 바람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플로리다와 달리 공원에는 많은 아랍계 여성들이 검은 차도르를 두르고 가족과 함께 나와 즐긴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에도 검은 히잡과 차도르를 눈만제외하고 두르고 보통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복장은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신에 대한 복종을 나타낸다 한다. 난 그들을 볼 때마다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다른 나라에서 사는 동안은 그 검은 베일을 벗어던져버릴 수는 없는 걸까? 무엇을 위해 저들은 평생 저렇게 얼굴과 몸을 감싸고 살아야 하는 걸까? 이제는 패션브랜드인 샤넬도 아랍계 모델을 고용해 히잡을 선보인다고 한다. 나름대로 그들도 그들의 복장에 아름다움을 더할 수 있겠지만 내 눈에는 모두 똑같아 보인다. 그들은 아름다운 옷도 입을 기회가 없는 걸까? 아마도 그들은 신을 숭배하고 복종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다면 이방인인 내가 느끼는 동정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직 무슬림 남자들은 비교적 복장이 자유로운 데 반해 여자들만 그들의 틀에 갇혀 일생을 지내는 게 여성의 인권과 자유를 외치는 여성 인권주의자들의 눈에는 반갑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답답함이 밀려오며 한국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물론 과거 한국에서도 여성의 인권은 그리 존중받지 못했으니 현재의 한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6월부터는 2주 정도에 한 번씩 Stony Creek park에서 무료 콘서트가 열린다. 비치의자 2개 달랑 차에 싣고, 혹은 자전거를 차에 싣고 저녁 6시쯤 도착한다. 보통 7시에 시작하니까 그전에 자전거를 타거나 카약을 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남편덕에 부지런히 따라다니다 보니 이제는 제법 이게 일상 routine이 되었다. 이미 senior대열에 합류한 남편은 세월의 위기감을 느꼈는지 더욱 자신을 재촉한다. 보통은 4-5인조 그룹이 와서 70-80년대 Rocknroll을 흥겹게 부르면 사람들은 무대 앞으로 나와 흥겨운 가락에 몸을 맡긴다. 특히 노인층의 부부들이 나와 춤을 즐긴다. No judgement! Don't be judgemental! 어느 gym에서 본 문구다. 맞는 말이다. 한국문화중 내가 싫어하는 것 중에 남을 너무 의식해야 하고 유행에 맞춰야만 정상인인 것 같은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 몸매가 어떻든 복장이 어떻든 그들이 행복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데 뒤에서 흉볼이유가 있을까? 무대뒤의 호수에서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붉게 물든 호수는 어느덧 하루를 마감하고 휴식에 들어갈 차비를 한다. 깨알 같은 하루하루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행복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6월 중순부터 거의 한 달 동안은 뒷마당에 오디가 열리기 시작한다. 올해는 가물어서 그런지 크기도 작고 많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보통 아침에 덥기 전에 대략 한 바구니 정도 따다가 씻어서 큰 유리병에 오디와 설탕을 2대 1로 섞어 저장용으로 보관했다가 가을에 플로리 다 가기 전에 친구들에게 진액을 나눠준다. 그탓에 내손톱은 늘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어 손 내놓기가 창피할 지경이다. 이 정도면 이제 시골 농부가 된 것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미국 사람들은 별로 오디를 즐겨하지 않는다. 길가에도 여기저기 오디나무가 있어 이만 때쯤이면 나무밑이 보라색으로 물들어있다. 새들만이 여기저기 분주하게 날아다니며 따먹기에 바쁘다.
남편은 gardening을 좋아해 잔디를 밀어내고 땅을 뒤엎은 곳에 앞마당에 매년 야채를 심는다. 나는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 겨우 물만 줄 뿐인데 그것도 가끔은 게으르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나도 이들에게도 생명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특히 비 온 후에는 쑥자라 있다. 토마토, 오이, 잎채소, 호박, 피망들을 주로 심는다. 나는 가꾸는 것에는 재주가 없어 수확에 열중한다. 그러니 6월 중순부터는 늘 하루가 바쁘다. 내생 전 이런 것을 한국에 살면서는 해보지 못했다. 요즘 한국에 가서 서울도착하면 시골에서 온사람처럼 여기저기 두리번거린다. 더구나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서울의 모습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첨단기술, 고층빌딩은 이미 내가 그동안 자라고 살며 누리는 혜택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도 일찍부터 복잡한 도시가 싫어 귀농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자연이 주는 평화, 풍요를 느낄 수 있게 됨에 감사한다.
늘 말하듯이 난 변두리에 산다. 우리 이웃인 Susan은 닭을 뒷마당에 키운다. 처음에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수탉울음소리에 의아해했다. 언제부터인가 닭들이 길가로 나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그녀의 닭들이었다. 우리를 뛰쳐나와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Susan과의 인연은 처음에 한국배같이 둥근 배를 나눠 준 것부터 시작한다. 그녀의 집에서 garage sale을 해서 처음으로 방문해 그녀의 딸을 만났고 그 집 앞에 배나무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국은 배가 주걱같이 생겼는데 한국배처럼 둥근 배가 달려있어 동양의 배 같이 생겼다고 하니 두 개를 따서 주었다. 그해 가을에 Susan이 배를 따서 작은 상자에 담아 나에게 주었다. 나는 그 마음이 고마와서 한국음식인 잡채와 김치전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나중에 가족들이 좋아했다며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인종은 달라도 이심전심이라는 것은 있다. 아예 작년에는 배나무모종을 나에게 선물해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플로리다로 떠나기 전에 뒷마당에 심었지만 추운 겨울을 잘 견딜까 걱정스러웠다. 올해 난 플로리다에서 오자마자 뒷마당의 배나무로 달려가 살펴보았다. 배나무는 하얀 배꽃을 피워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왜 그렇게 반갑던지.... 마치 집 나간 강아지가 무사히 돌아온 느낌이랄까? 난 배나무사진과 문자를 Susan에게 남겼고 그녀는 며칠 후 달걀 한다즌을 가지고 왔다. Welcome home! 이라며.... 열어보니 파는 달걀처럼 깨끗하지 않아도 이것이야말로 organic달걀이 아닌가? 깨보니 짙은 노른자와 신선함이 정말 다르다.
이쯤 되면 난 명실상부한 시골아낙네로서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자기 '인생이 별거더냐'라는 노랫가사가 떠오른다. 이제 와서 그노랫가사가 와닿는 것은 나이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