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giving, 2023!(2023년 추수감사절)
11월 23일 목요일 추수감사절에 남편과 나는 오하이오에 있는 남편의 친구 Tom의 집에서 Thanksgiving holiday를 같이 보내기로 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우리는 플로리다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곤 했다. 더욱이 시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매년 난 칠면조를 굽고 매쉬드 포테이토, 그린빈스, 고구마파이, 스터핑, 크렌베리소스를 직접 요리해 당일날 아침 일찍 올랜도로 향해 시어머지집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2020년부터는 플로리다 이웃들과 식사를 준비해 나누었다.
작년부터 플로리다에 내려가지 못하는 관계로 Tom과 추수감사절을 함께했다. 작년에는 그가 미시간으로 올라와 함께 했다. 작년부터 추수감사절날 크게 달라진 모습이 하나 있다. 바로 Kroger에서 추수감사절 패키지를 사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Tom이 제안한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제 나는 홀리데이 요리를 안 하고 싶은 게으른 여자가 되었다. 그가 내실력을 못 믿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에게는 추수감사절이 기다려지는 명절이 되었다. 고마워, Tom!
그래도 나는 그리 뻔뻔한 여자가 못된다. 한국여자의 근면함이 어디 가겠는가? 가기 전 이틀 동안 난 폴란드만두를 만들고 폴란드요리인 양배추롤을 만들어 갔다. 그의 집에 여자가 없으니 아무래도 내가 움직이게 된다. 우리는 점심에 칠면조요리를, 저녁에 내가 준비한 폴란드 요리를 먹었다. 후식으로는 내가 만든 구운 사과를 먹었다. Kroger에서 주문한 칠면조요리는 먹을 만했다. 특히 난 칠면조를 너무 오래 구워 고기가 퍽퍽한 느낌이 있는데 여기의 칠면조는 말 그대로 juicy 하다. 다른 요리의 드레싱은 비교적 달착지근하고 기름지다. 한마디로 집에서 요리한 우직한 맛보다는 감칠맛 나는 소스가 매력적인 것 같았다. 그런데 칠면조크기에 비해 그래비 소스가 적어 난 다시 만들어야 했다. 한국에 있을 동안 남편이 중국에서 크리스마스때와서 칠면조를 구하러 여기저기 알아보다 한 농장을 찾아 거의 미국칠면조가격의 두 배가격에 칠면조를 주문해 식구들과 함께 했다. 닭고기를 안 좋아하시는 나의 엄마는 기름이 적은 칠면조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Tom과의 인연은 매우 깊다. 그의 전부인은 한국여자였고 그의 충고를 따라 남편은 한국에 와서 나를 만나는 계기를 가졌다. 더욱이 그는 내 고향 서울마포에서 1992년 강사로 일하며 부인을 만났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Tom은 내아파트 근처에 '웬디스'를 자주갔다 한다. 나도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갔었다. 나도 그때 거기 살고 있었는데 사람의 인연이란 정말로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남이 이어지는지 정말 신기하다. 옛말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아마도 그때 거리에서 서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훗날 이렇게 미국에서 다시 이어질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Erie호수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콘도에는 나도 모르는 한국 고대시대의 부처나 유물들이 잘 전시되어 있다. 더욱이 그는 올해 30년째 교수로 재직하고 은퇴했다. 남편은 샴페인을 준비하고 난 작은 선물을 준비해 갔다. 그는 이제 우리에게 가족과 다름없다.
식사후 스포츠광인 그는 풋볼게임을 보고, 나와 남편은 그 근처를 산책했다. 늘 여름에만 와봐서 겨울 풍경은 낯설었지만 그것대로 아름다웠다. 잎들이 떨어진 나무사이로 저물어가는 해는 늘 플로리다에서 보던 뜨거운 태양과 느낌이 달랐다. 이제 한 달 남짓 남은 올해가 저물어감을 보여주는 석양은 사뭇 경건하기까지 했다. 우리의 인생도 이렇듯 언제인가는 저무는 태양처럼 사라진다. 인생의 철학을 모르는 나도 사뭇 생각에 잠기게 한다.
다음날 오후 우리는 호수를 끼고 드라이브를 갔다. 여름에는 Tom의 지붕 없는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갔지만 이번에는 그의 SUV 차로 갔다. Tom이 사는 Port Clinton에는 넓은 들이 많다. 여름에는 옥수수나 콩등이 자라는 넓은 들판을 따라 호수를 끼고 줄곧 달린다. 다운타운에는 작은 어선들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호수에서 잡은 perch(농어)를 요리하는 작은 음식점들이 추수감사절 다음날인데도 영업 중이다. 여기도 우리같이 여름에는 북쪽에서, 겨울에는 남쪽에서 지내는 snowbird들이 많아 겨울에는 더욱 한산한 것 같다. 사실 호수라고 하지만 한국기준에서는 거의 준바다 수준이다. 웬일인지 난 이곳이 겨울에 더 아름답다고 느꼈다. 마른 나뭇가지사이로 보이는 호수와 장작을 쌓아 겨울을 준비한 집들의 조화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우리는 등대가 있는 곳에서 차를 세우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겨울등대는 정말 쓸쓸하다. 인적이 없는 곳에서 찬바람 맞으며 홀로 얼어붙은 호수를 바라보는 광경은 영화에서 주로 고독을 표현할 때 쓰는 장면이 아닌가! 정말로 내가 그림에 소질 있거나 멋진 작가라면 시나 그림 한 장 남기고 싶은 심정이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Tom의 basement에 있는 영화관같은 음향과 스크린을 갖춘 거실에서 '미나리'를 보았다. 아니 추석도 아닌데 온 가족이 모여 한국 영화 보는 느낌이다. 두 남자들이 나를 배려해 한국 영화를 보기로 한 거다. 난 비행기 안에서 쪼그리고 대충 본 게 있어서 대충은 내용을 알았지만 두 남자는 처음이란다. 이 영화에서 남자주인공이 아내에게 말한다. " 애들에게 아버지가 뭔가를 해내는 것을 보여줘야 하잖아?" 라며 농장에서 농사지을 것을 고집한다. 아이들에게 멋진 아빠, 존경받는 아빠가 되기를 갈망하는 주인공의 이 한 마디가 내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 모든 부모들은 그들의 아이들에게 성공한 삶, 적어도 바른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설사 그들이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할 지언정 그들의 아이들은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난 Tom과 내 남편이 주인공의 마음을 나만큼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Tom과 내남편 둘다 본인들의 친자식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한 장면에서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한국 사람은 머리를 써, 이것 봐 돈들이지 않고 우리가 우물을 찾았잖아, 머리를 써 머리를...." 맞다! 한국사람들은 머리를 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우리는 다시 미시간집으로 향했다. 내년에 볼 것을 약속하며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를 한꺼번에 다했다. 그가 기독교신자라면 'Happy Easter! 까지 나올 판이다. 그는 건강문제가 있어 Take care! 도 함께....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5월 초 다시 미시간으로 올 때 그의 집에 들를 것이다. 반년 후에.....
믿거나 말거나 추수감사절을 미시간이나 오하이주에서 지낸 것은 2년째이다. 미시간사람들은 이건 겨울이 아니다고 한다. 본격적인 겨울은 1월부터라니...... 아이고 빨리 1월이 되기 전에 도망가고 싶다. 플로리다로....
Thanksgiving lunch!
Polish food dinner!
Lake Erie!
Tom's Condominium
Sunset, Ohio!
Tom's Korean relic collections!
The light house in Lake E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