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of the Best, Poland 13(폴란드 여행 13일째)
다음날 우리는 12시 5분 기차를 타기로 되어있었지만 숙소주인이 10시까지 집을 비우란다. 집 없는 설움이여...
우리는 짐을 챙겨 이고지고 숙소를 나와 밀크바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다시 광장으로 가서 광장 가운데 분수옆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아직도 보지 않은 게 많은 데 떠나야 한다는 게 좀 섭섭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렇지만 시동생처럼 폴란드에 살고 싶은 마음은 안 들었다. 언어가 안 통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언어와 인종이 달라도 기본적인 것은 비슷한 것 같다. 더구나 교통과 통신, 인터넷등으로 더욱 세계는 가까워졌다. 동양인들은 중국인 몇몇을 본 것 외에는 많지 않았다. 기차에서 먹을 프렛첼을 사서 기차를 탔다.
오후 1시 45분 쯤 우리는 Rzeszow에 도착했다. 이도시는 남서쪽 지방의 수도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나토가 이도시에 물류센터를 설립해 물자조달이 원활하게 한다고 한다. 기차에서 내리니 시동생(Jeff)의 부탁으로 친구인 엘리자베스와 그의 아들이 반가운 웃음을 띠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한 번도 그들을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은 우리를 알아보았다. 서로 포옹을 하고 그녀의 아들차로 우리는 이동했다. 역은 한창보수작업 중이라 어수선했다. 확실히 관광지 역은 아니었지만 난 또 다른 도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우리는 그들과 대화가 좀 어려웠다. 그들은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엘리자베스가 대화도중 자꾸 '덕덕'하는 소리를 내 난 처음에는 어디 오리가 있나 생각할 정도로 의아했다. 남편도 거의 폴라드 어를 몰라서 애를 먹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tak 같은 발음으로 '예스'에 해당된단다. 시동생인 제프는 작정하고 폴란드어를 배웠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그들은 선한 사람들 같았다.
제프집에 도착하는 데 한 40분 걸린것같다. 도착하니 말 그대로 '언덕 위에 하얀 집이다.' 주변에 이웃도 없고 넓은 잘 가꾼 도로를 들어가니 아담한 예쁜 집이 있었다. 드넓은 잔디가 깔린 정원옆에 넓은 텃밭이 있었다. 옥수수, 수박, 오이, 호박등이 수확하는 사람이 없어 그냥 밭에 나뒹굴고 있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엄청 많은 해바라기들이 쭉 줄지어 심어 있었다. 남편이나 제프나 시어머니를 닮아 재배하고 꽃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제프가 미시간에 살 때는 바빠서 그런 것을 즐기지 못하다가 이제 여기서 자기의 제2의 인생을 찾아가고 있는 듯했다.
2020년에 미국을 떠났으니 근 3년만에 본 우리는 제프와 서로 꼭 포옹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제프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 계속 기침을 했다. 난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한장 찍었다. 오랫만의 형제의 만남이 아닌가! 아마도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그는 행복해 보였다. 비교적 부유한 그는 컴퓨터로 아직도 그의 일을 하고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는 폴란드 시민권을 9년간 기다렸다 한다. 그는 이중국적자다. 사람마다 운명이라는 게 있다. 그는 미국에서 낳고 살았지만 그의 원래 고향은 폴란 드였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아직도 한국 국적을 고수하고 있다. 이중국적이 허용이 안 되는 한국법 때문이다.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본인들이 행복한 곳을 찾아 떠나고 그곳에서 자리 잡는다. 이제 국적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닌 것이 되었을까? 미국에 있는 집과 토지는 대리인을 통해 관리하고 가끔 우리는 그의 캐빈(숲 속에 있는 나무로 된 오두막집)을 가을이나 여름에 방문한다.
남편과 시동생이 대화하는 동안 난 엘리자베스와 대화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에서 너무 많은 난민들, 특히 여자와 아이들이 많이 밀려와 경제적으로 폴란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름대로 아쉬움을 표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좀 더 잘 사는 이웃나라로 가기를 원했다. 아마 이것은 모든 폴란드인들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또한 폴란드 대통령은 더 이상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자국도 러시아에서부터 지켜야 하기 때문에.... 더욱 폴란드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에서 무기를 대량구입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상황들이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동병상련의 아픔이랄까?
우리는 제프집에서 저녁을 먹고 제프가 마련해준 그단스크의 호텔처럼 광장 안에 있는 숙소로 엘리자베스의 아들이 데려다주었다. 광장 안의 불빛아래 역시나 아름다운 건물들과 레스토랑들이 낯익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Ambasadorski호텔은 고풍스러운 외관과 넓은 거실을 지닌 제프가 자주 미국에서 폴란드 방문 시 자주 머물렀던 곳이란다. 고마워, 제프!

Jeff's house in Poland!

Jeff's garden!

Market square, Rzeszow, Poland!
Watermelon from Jeff's garden!

Market square, Rzeszow!